잠실, 함께 자란 도시
새로 지은 아파트에 이사하고, 지하철을 타고, 야구장에서 목청을 높이던 곳. 1975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진 100장으로 잠실과 그 곁에서 함께 자란 생활을 따라갑니다.
첫 장부터 보기1975–1979
집을 짓고, 동네가 되다
공사 현장에 아파트가 올라가고, 새 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낮은 건물과 넓은 빈 땅 사이에서 잠실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창문보다 먼저 생긴 동네의 윤곽
창틀도 채워지지 않은 아파트들이 흙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비계와 자재가 늘어선 바닥에는 아직 화단도 주차선도 없다. 반복되는 콘크리트 골조는 많은 가구의 주거를 한꺼번에 마련하던 잠실 개발의 규모를 보여준다.
새 아파트 앞에 모인 사람들
준공을 알리는 세로 현수막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밝은 외벽, 곧게 뻗은 도로, 아직 작은 가로수가 모두 새것이다. 집의 완성은 개별 가구의 입주이면서, 도시가 새 주거지를 공식적으로 선보이는 행사이기도 했다.
준공식의 격식 사이로 오가는 말
꽃무늬 상의와 민소매 차림의 주민들이 난간 곁에 모여 이야기한다. 웃음을 띤 얼굴과 손짓이 공식 행사의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기관 기록에 따르면 이 시영아파트는 철거민에게 분양된 주택이었다. 새집을 둘러싼 생활의 기대를 가까이서 만나는 장면이다.
자동차보다 커 보이던 체육관
겹겹이 포개진 지붕의 실내체육관 앞을 작은 자동차 몇 대가 지난다. 넓게 그어진 차선과 비어 있는 앞마당은 시설의 거대한 크기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1979년 준공된 이 체육관은 이후 국제대회를 치를 잠실 스포츠 단지의 한 축이 되었다.
열다섯 층에 올라간 일상
앞동의 발코니가 층층이 이어지고, 건물 사이에는 운동장과 녹지가 넓게 남아 있다. 멀리서도 읽히는 동 번호는 큰 단지 안에서 집을 찾는 표식이다. 1978년 준공된 잠실주공5단지는 15층 아파트가 주거 풍경의 높이를 바꾸던 시기를 보여준다.
1980–1983
열차가 오고, 사람들이 오다
출근길 승강장과 새 교량, 체육시설과 어린이 공원. 집을 채운 사람들에게 이동할 길과 함께 쓸 장소가 생겨납니다.
놀이공원이 오기 전의 호수
물가를 따라 드러난 흙과 공사길이 둥근 호수의 윤곽을 그린다. 지금의 석촌호수를 떠올리게 하는 짙은 가로수나 놀이시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호수와 도로를 함께 정비하던 1980년, 물가의 풍경도 새 주거도시의 일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같은 모양의 집, 서로 다른 생활
붉은 벽면과 밝은 계단실을 가진 아파트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같은 형태의 집을 반복해 배치한 풍경은 당시 대규모 주택 공급의 방식을 드러낸다. 이 시영아파트는 무주택자와 철거민의 주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1970년대에 단계적으로 건설되었다.
아파트 곁을 지나기 시작한 전철
붉은 띠를 두른 전동차가 아파트 바로 옆 고가 선로를 달린다. 선로 아래에는 빈 땅과 포장된 길이 함께 남아 있다. 1980년 신설동~종합운동장 구간의 개통을 앞둔 시운전 장면으로, 새 주거지의 생활권이 철도를 따라 넓어지던 순간이다.
강을 건너는 새 생활권
넓은 강과 모래톱을 가로지르는 잠실철교 위로 전동차 한 편성이 길게 놓인다. 아직 건물보다 물과 빈 땅이 크게 보이는 풍경이다. 다리 위의 짧은 열차는 강 양쪽의 집과 일터를 매일 오갈 수 있게 할 새로운 연결을 예고한다.
승강장을 채운 여름 셔츠
열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승강장을 가득 메운다. 흰 반소매 셔츠와 둥근 안경, 짧게 말린 머리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종합운동장역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1년의 장면이다. 철도 건설의 결과가 선로나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물 위에 세운 계단의 높이
여러 높이의 다이빙대가 물 위로 겹쳐 솟고, 큰 창으로 들어온 빛이 수면을 밝힌다. 이용객이 없는 수영장은 운동 시설의 구조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동네의 집과 도로가 늘어나던 시기에 잠실에는 국제경기까지 치를 수 있는 전문 체육시설도 갖춰지고 있었다.
빈 운동장이 관중의 장소가 되다
지붕의 검은 곡선 아래로 관중석과 초록 잔디가 펼쳐진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사람들의 밀도가 새 야구장의 규모를 실감하게 한다. 1982년 7월 잠실야구장 개장을 기념한 고교 초청 경기다. 훗날 익숙해질 야구 관람의 공간이 막 문을 연 때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새로운 길
반듯한 타일벽 사이로 에스컬레이터 두 줄이 나란히 놓였다. 손잡이와 금속 발판은 아직 새 시설의 윤곽을 선명하게 남긴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교대 앞으로 이어지는 2호선 연장 구간의 기록이다. 지하철은 이동 수단뿐 아니라 걷고 오르내리는 방식도 바꾸었다.
초록색 전동차와 종착역 표지
초록색 차체의 정면에 ‘종합운동장’ 행선판이 달려 있다. 선로와 승강장 사이를 가로막는 스크린도어는 없고, 운전실의 모습도 가까이 보인다. 아직 순환선이 완성되기 전, 잠실이 노선의 끝이던 시절을 행선판 하나가 전해준다.
집 앞의 길이 도시의 간선으로
아파트 앞을 굽어 도는 도로와 공사 중인 빈 땅이 한 화면에 겹친다. 다리 아래와 위로 길이 나뉘면서 자동차의 흐름도 입체적으로 바뀐다. 잠실대교 부근 강남로, 오늘날 올림픽대로의 확장 현장으로, 강변이 대규모 이동 통로로 정비되던 과정이다.
가로수 너머에서 넓어지는 둔치
굵게 자란 가로수 줄은 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그 너머 강변에는 흙을 고르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미 자리 잡은 길과 새로 만들어지는 여가 공간이 나란히 보인다. 잠실 체육공원 조성 현장은 강을 바라보는 것에서 강가를 이용하는 생활로 옮겨가는 변화를 담는다.
작은 운전자가 배우는 도시
아이들이 작은 페달차를 타고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있는 길을 달린다. 겨울 외투를 입은 어른들은 옆에서 지켜본다. 1983년 문을 연 어린이교통공원은 실제 도로를 아이 크기로 줄인 공간이었다. 자동차가 많아지는 도시에서 교통질서도 놀이를 통해 배우게 했다.
1984–1988
세계를 맞이하던 우리의 얼굴
경기장과 도로만으로 대회를 치를 수는 없었습니다. 응원하는 시민과 자원봉사자, 준비하는 손길 속에서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을 만납니다.
호돌이 아래에서 찍은 기념사진
거대한 오륜기와 호돌이 표식 아래로 나들이객이 오간다. 앞쪽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향해 서 있다. 1984년 주경기장 개장 무렵, 국제대회를 위한 건축물은 시민들이 찾아와 자신의 사진을 남기는 새 명소이기도 했다.
경기장의 지붕이 올라가는 동안
붉은 철골이 허공에서 격자를 이루고, 주위에는 여러 대의 크레인이 서 있다. 바닥의 자재와 흙더미에서는 완성된 경기장의 정돈된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 역도경기장 상량식의 기록은 국제행사를 준비한 시간이 거대한 건설 현장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출발선에서 터져 나온 속도
선수들이 낮게 숙인 몸을 일으키며 출발선을 박차고 나간다. 트랙의 번호와 출발대, 뒤편 전광판이 한순간의 움직임을 둘러싼다. 1985년 국제육상대회의 장면으로, 잠실주경기장은 올림픽 이전부터 실제 경기를 치르며 선수와 관중을 맞고 있었다.
공중에 멈춘 도약
선수의 몸이 높이뛰기 바 가까이 떠오르고, 관중은 트랙 가장자리에서 이를 바라본다. 큰 경기장의 규칙적인 좌석과 순간적인 몸짓이 대비된다. 1985년 국제육상대회 사진에서 도시의 규모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 사람이 온몸으로 만드는 높이다.
한강의 가장자리를 다시 그리다
잠실대교와 잠실철교 너머로 다리가 연이어 놓이고, 양쪽 강변에는 길게 드러난 공사 구간이 보인다. 물가의 흙과 도로, 아파트가 한꺼번에 정비되는 풍경이다. 한강종합개발은 강의 제방뿐 아니라 이동과 휴식의 공간을 함께 재편하는 사업이었다.
경기장 맞은편에 들어선 선수촌
높이가 다른 아파트들이 배치되고, 강 건너편이 아니라 바로 길 건너에 경기장이 보인다. 건물 사이에는 공사 흔적과 아직 작은 나무들이 남아 있다. 아시아선수촌은 1986년 대회를 위해 마련된 거처이면서, 대회 뒤에도 이어질 도시의 주거 공간이었다.
대회를 떠받친 시민의 자리
천장 가운데에서 뻗은 색색의 장식 아래로 수많은 의자가 원을 이룬다. 경기장의 중심을 채운 것은 선수 대신 시민봉사자들이다. 1986년 아시아경기 시민봉사자 대회는 국제행사가 경기 기록뿐 아니라 안내와 운영을 맡은 많은 사람의 시간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한 사람씩의 얼굴로 이루어진 대회
앞줄의 얼굴과 어깨 너머로 단정한 옷차림의 참석자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멀리서 하나의 군중처럼 보이던 집회가 가까이에서는 서로 다른 표정과 머리 모양으로 나뉜다. ‘시민봉사자’라는 이름 뒤에 있던 개인들의 모습을 읽게 하는 사진이다.
도시 전체가 손님을 맞는 방식
넓은 도로 위에 ‘WELCOME’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알리는 문구가 걸렸다. 가로수와 중앙분리대, 횡단보도까지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다. 환영의 표시는 경기장 입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회를 향해 가는 길 자체가 도시를 소개하는 무대가 되었다.
아직 차가 드문 새 도로
새로 칠한 차선이 지하차도 입구까지 길게 이어진다. 양옆의 빈 땅과 전신주 때문에 도로의 폭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1986년 남부순환도로 연장은 대치동에서 가락시장으로 가는 길을 연결했다. 주거지와 시장을 잇는 기반시설이 주변보다 먼저 갖춰진 모습이다.
아파트 사이에 마련한 생활의 중심
높은 주거동 사이에 낮고 둥근 상가 건물이 자리 잡았다. 작은 광장과 보행 공간이 건물 주위를 감싼다. 아시아선수촌은 잠을 자는 방만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물건을 사고 사람을 만나기 위한 장소가 함께 있어야 하나의 동네가 될 수 있었다.
돌 하나를 의자 삼은 강변
사람들이 물가의 돌에 앉아 길게 낚싯대를 드리웠다. 모자와 조끼 차림, 발치에 놓인 작은 도구가 여가의 준비를 보여준다. 정비 중인 한강의 기록 속에서도 시민들은 자기 방식으로 물가에 자리를 잡는다. 큰 공사와 느린 오후가 같은 도시 안에 있었다.
운동복이 달라도 같은 출발선
반소매 티셔츠와 긴바지, 가벼운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쏟아져 나온다. 전문 선수의 통일된 복장과 달리 각자의 일상복이 섞여 있다. 1987년 올림픽 성화봉송로 달리기대회는 다가올 국제행사를 시민이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축제로 바꾸었다.
새로운 문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
거대한 날개 모양의 지붕 아래를 양복과 여름 셔츠 차림의 사람들이 오간다. 벽화와 오륜 마크는 멀리서도 또렷하고, 그 아래 사람은 작게 보인다. 1988년 완공된 세계평화의문은 올림픽공원의 상징이면서, 이후 수많은 약속과 나들이가 시작되는 입구가 되었다.
오륜 풍선이 떠 있는 큰길
도로 양쪽에 풍선 장식이 늘어서고, 넓은 횡단보도 너머로 아파트들이 이어진다. 차와 사람의 이동을 위해 만든 길에 축제의 장식이 덧입혀졌다. 올림픽을 앞둔 잠실에서는 주거지의 평범한 도로도 국제행사의 분위기를 함께 품었다.
강변에서 함께 빌던 성공
한복 차림의 공연자들이 움직이고, 배의 층층 난간과 물가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국기와 장식이 일상의 선착장을 행사장으로 바꿔 놓았다. 1988년 잠실 한강 둔치에서 열린 올림픽 성공 기원 연등제의 기록으로, 대회를 기다리는 마음이 종교·공연·시민 구경과 만난다.
호숫가에 나타난 다른 종류의 건물
호수 너머로 높은 호텔과 붉은 놀이시설의 구조물이 함께 보인다. 반듯한 주거동이 중심이던 잠실 풍경에 숙박과 오락을 위한 형태가 들어왔다. 기관 기록은 호텔롯데월드가 1988년 올림픽에 맞춰 완공되었다고 설명한다. 호숫가는 새로운 소비와 여가의 장소로 바뀌고 있었다.
올림픽이 일어난 코트의 높이
선수들이 서로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고 농구대 아래에 모여 있다. 오륜기와 태극 장식, 보라색 관중석이 코트의 색과 겹친다. 1988년 서울올림픽 한국·불가리아 여자 농구 경기다. 거대한 행사라는 말이 공 하나를 쫓는 선수들의 가까운 몸짓으로 바뀐다.
1995–1996
관중석에서, 골목에서, 물가에서
큰 대회가 지나간 자리에서 생활은 계속됩니다. 야구를 보고, 호수에 배를 띄우고, 강변에서 공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1990년대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 오래된 단지길
70동의 큰 숫자 아래로 낮은 아파트들이 이어지고, 단지 안쪽 길에는 차들이 나무 그늘을 따라 서 있다. 전신주와 전선도 집 가까이 지나간다. 새로 지은 주택의 정면보다, 시간이 쌓인 주거지의 안쪽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차가 지나는 옆에서 고치는 다리
밀짚모자와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철근이 드러난 도로 위에서 일한다. 바로 옆 차로로는 승용차와 트럭이 계속 지나간다.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된 다리는 통행을 멈추지 않은 채 수리되어야 했다. 도시의 편리함 뒤에 있는 유지보수 노동이 가까이 드러난다.
초록 전철과 끝없이 이어지는 선로
전동차의 창문과 철교의 선로가 한 점을 향해 길게 좁아진다. 방호 울타리와 머리 위 전선은 강을 건너는 길을 촘촘히 둘러싼다. 지하철이라는 이름과 달리, 잠실의 전철은 지상과 강 위를 달리며 동네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호수 한가운데 들어온 놀이의 섬
짙은 물빛 가운데 성과 놀이시설이 모인 섬이 떠 있고, 뒤로 백화점과 호텔이 길게 이어진다. 물가의 산책과 쇼핑, 놀이공원 방문이 한 장소에서 연결되는 풍경이다. 주거도시로 출발한 잠실이 가족 나들이와 소비의 목적지가 된 모습을 한눈에 보여준다.
동화 같은 배경 앞의 웨딩드레스
흰 드레스와 검은 예복 차림의 두 사람이 뾰족한 탑 아래에 서 있다. 뒤로는 놀이시설의 선로가 지나가고 주변 사람들은 촬영을 지켜본다. 관광을 위해 만든 이국적인 풍경이 개인의 기념사진 배경으로도 쓰인다. 장소의 이미지가 가족의 앨범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큰 시설 옆에 남은 느린 걸음
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로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간다. 화려한 놀이시설보다 나뭇가지와 흙빛 산책로가 화면을 채운다. 석촌호수의 가치는 멀리서 찾아오는 나들이객에게만 있지 않았다. 동네에서 잠깐 걸으며 쉬는 생활도 같은 물가를 사용했다.
주민 체육대회에 세운 큰 그네
색색의 천으로 꾸민 높은 그네 아래에서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한 사람은 공중으로 높이 솟아 있다. 트랙 가장자리에는 모자를 쓴 구경꾼들이 앉았다. 국제대회를 치르던 운동장은 동네 주민이 함께 놀고 응원하는 자리로도 쓰였다.
‘잠실제1동’이라는 응원석
관중석 앞에 잠실제1동·제2동의 이름표가 크게 붙어 있다. 주민들은 모자와 색색의 응원 도구로 자리를 채운다. 국가대표나 프로팀 대신 동네 이름을 앞세운 가을체육대회다. 주소로 쓰던 행정동이 함께 응원하는 모임의 이름이 된다.
줄을 맞춰 쉬는 소풍의 시간
아이들이 커다란 조형물 아래 낮은 턱에 나란히 앉았다. 작은 가방을 곁에 두고 기다리는 모습과 옆에 선 어른이 단체 나들이의 잠깐 쉼을 보여준다. 경기장과 조각을 갖춘 공원은 아이들에게 도시 밖으로 멀리 가지 않고도 만날 수 있는 소풍 장소였다.
노란 운동복이 번지는 나무 그늘
노란 옷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벤치에 앉거나 나무 곁에 모여 있다. 누구는 쉬고 누구는 몸을 뻗으며, 같은 복장 안에서도 움직임은 제각각이다. 넓은 기념공원이 아이들의 작은 몸짓으로 채워지면서, 대회를 기억하는 장소는 일상적인 놀이터가 된다.
광장을 연습장으로 쓰는 사람들
넓은 벽돌 광장에 사람들이 흩어져 몸을 굽히거나 균형을 잡고 있다. 뒤편의 체육관보다 가까운 몸의 움직임이 먼저 보인다. 경기장 밖의 평평한 바닥은 시민이 자기 속도로 운동을 연습하는 공간이다. 대형 시설의 여백도 생활의 무대가 된다.
해가 지고 난 뒤의 평화의문
분홍빛 구름 아래에서 평화의문의 넓은 지붕이 검은 윤곽으로 남는다. 밝은 낮의 행사 표지보다 하늘과 건물 사이의 여백이 크게 느껴진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이 구조물은 매일 다른 빛을 받으며, 동네 사람들이 저녁을 지나는 배경이 되었다.
호텔 옆에 남아 있던 빈 땅
이미 영업 중인 호텔과 백화점 옆으로 흙더미와 공사 차량이 보인다. 울타리 안에는 나무가 남은 곳과 땅을 파낸 곳이 뒤섞여 있다. 제2롯데월드 부지를 기록한 사진이다. 완성된 소비 공간 바로 곁에도, 용도가 정해지고 다시 지어질 땅이 오랫동안 존재했다.
다리 아래에서 만나는 주말의 도시
거대한 교각 아래로 자전거와 자동차, 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반복되는 기둥이 만든 긴 그늘은 강변의 한낮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위쪽에서는 자동차가 이동하고 아래쪽에서는 사람이 머문다. 한 구조물에 서로 다른 속도의 생활이 겹친다.
흙바닥 코트의 한 번의 슛
민소매 상의 차림의 사람이 농구공을 던지고, 두 사람은 옆에서 공의 궤적을 바라본다. 반듯한 실내 코트 대신 흙바닥과 이동식 골대가 있다. 거창한 관중석 없이도 운동은 시작된다. 강변은 동네 친구들이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보내는 가까운 장소였다.
백화점 앞에서 커진 소비의 풍경
큰 쇼핑백을 닮은 백화점 외벽에 세로 광고가 걸리고, 앞길에는 승용차와 버스가 늘어서 있다. 건물은 물건을 파는 장소인 동시에 도시에서 눈에 띄는 표지가 된다. 아파트 사이의 작은 상가와는 다른 규모의 소비 공간이 잠실사거리의 인상을 바꾸었다.
뛰는 사람, 앉아 읽는 사람
붉은 상의를 입은 사람이 호숫가를 달리고, 벤치의 사람은 손에 든 종이를 내려다본다. 잎이 없는 나무 사이로 물이 보인다. 같은 산책로에서 운동과 휴식이 나란히 이루어진다. 도시의 공원이 필요한 이유를 특별한 행사 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낮은 지붕 위로 솟은 굴뚝
비슷한 높이의 아파트 지붕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긴 굴뚝이 솟아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에서는 겨울 나무의 가지가 드러난다. 멀리 보이는 큰 건물과 달리 이곳의 생활은 낮고 촘촘한 단위로 조직되어 있다. 재건축 이전 잠실2단지의 밀도를 보여준다.
경기와 함께 움직이는 응원단
붉은 상의와 흰 반바지 차림의 응원단이 관중석 앞 단상에서 몸을 움직인다. 바로 뒤에서는 관중들이 경기를 바라본다. 야구장은 공이 오가는 운동장이면서, 음악과 율동을 함께 즐기는 공연장이기도 했다. 응원 자체가 관람 경험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풍경이다.
한 방향을 바라보는 수많은 얼굴
모자와 선글라스, 점퍼와 셔츠 차림의 관중들이 계단식 좌석을 메웠다. 몸을 앞으로 내민 사람과 등을 기대고 앉은 사람이 한 화면에 섞인다. 옷차림과 앉은 자세는 달라도 시선은 같은 경기장으로 향한다. 야구가 일상의 사람들을 잠시 하나의 관중으로 묶는 순간이다.
돌멩이와 얕은 물이 만든 놀이터
작은 배낭을 멘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물가의 돌 사이로 손을 뻗는다. 거대한 다리나 도시의 건물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자갈과 손끝만 가까이 보인다. 강변의 여가는 정해진 운동시설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작은 물웅덩이에서도 할 일을 찾는다.
301동과 304동 사이로 보이는 집들
커다란 동 번호가 적힌 두 벽 사이로 발코니와 빨래, 나무가 이어진다. 멀리 높은 상업 건물이 보이지만 눈길은 좁은 단지 안쪽으로 향한다. 바깥에서 하나의 아파트 단지로 보이던 공간이, 가까이서는 수많은 집의 창문과 생활 흔적으로 나뉜다.
나무 사이에 남은 호돌이
나무 그늘 속에 호돌이와 ‘SEOUL 1988’ 표식이 서 있다. 그 앞에는 자동차와 이동식 차단대가 놓여 기념물 주변의 일상적인 사용을 드러낸다. 대회가 끝난 지 여러 해가 지나도 마스코트는 남았다. 거대한 행사의 기억이 익숙한 동네 표지로 바뀐 모습이다.
아파트 사이에서 이어지는 옛 토성
곡선을 그리는 물가와 둥근 녹지가 넓게 펼쳐지고, 멀리 아파트들이 둘러선다. 몽촌토성 주변의 낮은 지형은 직선적인 도시 건물과 다른 리듬을 만든다. 올림픽공원은 경기 시설만 모은 곳이 아니라, 백제 유적과 녹지를 도시의 휴식 공간으로 함께 품은 장소다.
한꺼번에 모일 수 있도록 만든 광장
넓은 바닥에 원과 직선의 무늬가 이어지고, 유리 지붕과 건물이 그 둘레를 나눈다. 주변 아파트와 비교하면 광장의 빈 면적이 크게 드러난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도록 계획된 공간은 행사가 없는 날에도 걷고 만나고 쉬는 도시의 여백으로 남는다.
버스가 잠시 머무는 다리 아래
교량 아래에 버스가 서 있고, 옆으로 작은 의자와 물품들이 놓여 있다. 계단은 위쪽 도로와 강변의 바닥을 연결한다. 교각의 빈 공간은 단순한 통로에 그치지 않고 차량이 머무르며 활동을 준비하는 장소로 쓰인다. 거대한 구조물 아래에 작은 규모의 사용이 붙어 있다.
빨간 우산 아래의 낚시
붉고 흰 우산을 펼친 사람이 난간 곁에서 낚싯대를 들고 서 있다. 바로 옆에서는 보를 넘어 물이 쏟아지고, 위로는 다리가 길게 지나간다. 빠른 물과 교통 시설 한가운데에 느린 기다림이 놓였다. 개인이 고른 한 자리에서 강변의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백조 배에 실린 짧은 나들이
흰 백조 모양의 배에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호수 위를 지난다. 뒤편의 산책로와 놀이시설은 가까이 있지만 배 위에서는 잠시 거리가 생긴다. 멀리 여행하지 않고도 물에 떠 보는 경험을 즐길 수 있었다. 잠실의 여가는 이런 작고 구체적인 놀이로 기억되기도 한다.
노란 버스가 지나던 경기장 앞
노란 버스와 여러 색의 승용차가 나무 우거진 큰길을 지난다. 뒤편에는 지붕이 솟은 경기 시설이 보이고, 길 위의 현수막은 또 다른 행사를 알린다. 대회를 위해 만든 도로와 체육시설은 이후에도 통근·통학과 일상적인 이동의 배경으로 계속 사용되었다.
파란 차양 앞에서 주고받는 공
비슷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흙바닥에서 공을 주고받는다. 뒤에는 푸른 차양과 한강, 아파트가 차례로 겹친다. 프로 경기의 화려한 관중석과 달리 이곳의 운동은 작은 모임의 반복된 연습에 가깝다. 강변의 체육 공간은 운동을 보는 사람을 직접 하는 사람으로 바꾼다.
1999–2000
익숙한 것들을 가까이 보다
지붕 위 물탱크와 겹겹의 간판, 승강장 창가와 주차된 자동차. 새 천년을 맞는 동네의 표정은 작고 구체적인 생활의 흔적에 있습니다.
깃발의 원 너머, 오래된 초록
둥글게 늘어선 깃발 뒤로 분수가 솟고, 물 건너에는 낮은 둔덕과 숲이 이어진다. 국제대회의 기념 공간과 몽촌토성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올림픽을 위해 정비한 공원이 대회가 끝난 뒤에도 도시의 넓은 녹지로 남은 모습이다.
아파트 밖에도 이어지는 동네
낮은 지붕들이 바둑판처럼 난 길을 따라 빽빽하게 이어진다. 큰 학교 건물과 흙 운동장이 그 사이에 넓은 빈 면을 만든다. 잠실 주변의 생활권은 대단지 아파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은 필지의 집과 상가, 학교가 함께 도시의 하루를 떠받친다.
66동, 67동, 지붕 위의 생활 설비
큰 동 번호 아래로 발코니가 겹치고, 지붕에는 둥근 물탱크와 배관이 줄지어 있다. 비슷한 건물이라도 창과 빨래, 덧댄 시설에서 조금씩 다른 생활이 드러난다. 멀리서 단정한 배열로 보이는 주공아파트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오래 사용하며 더해 온 흔적이 보인다.
해가 진 뒤에도 끝나지 않는 경기
검은 하늘 아래 조명이 잔디와 선수들을 환하게 비춘다. 관중석 앞줄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둡고, 건너편 좌석은 작은 점처럼 빽빽하다. 낮의 일을 마친 뒤에도 많은 사람이 같은 경기를 볼 수 있는 야간 야구장은 도시의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소였다.
경기장을 품은 한강의 굽이
붉은 트랙을 감싼 주경기장의 타원형 지붕 너머로 한강과 여러 다리가 이어진다. 강 양쪽의 아파트는 이제 멀리까지 연속된 벽을 이룬다. 경기장 하나를 짓는 일에서 출발한 장면이, 도로와 주거지와 물길이 맞물린 도시 전체의 규모로 넓어진다.
간판으로 층수를 읽는 거리
학원과 노래방, 횟집의 이름이 건물 벽을 따라 세로로 빼곡하다. 도로에는 승용차들이 지나가고, 가게는 위층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석촌동의 상업 거리는 건물의 생김새보다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파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생활의 안내판이 되었다.
어린이교통공원의 문 앞
신호등 모양 장식이 달린 아치 아래로 공원 입구가 열린다. 긴 외투를 입은 사람이 그 앞을 지나고, 뒤편에는 잎이 진 나무와 아파트가 서 있다. 자동차가 많은 도시에서 어린이가 도로의 규칙을 익히는 공간도 동네 시설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교통 규칙을 가르치는 작은 인물
제복과 모자를 그린 익살스러운 안내판이 넓은 포장면 가운데 서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운다. 복잡한 도로의 규칙을 어린이가 가까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꾼 장치다. 놀이와 안전 교육이 같은 공원 안에 놓인다.
철길 아래에도 계속되는 길
높은 철도 구조물 아래로 차가 지나고, 그늘진 가장자리에는 가게와 보행자가 모인다. 위에서는 열차가, 아래에서는 동네의 이동이 이어지는 성내역 주변이다. 커다란 교통시설이 골목의 빛과 길의 높낮이까지 바꾸며 일상에 들어와 있다.
주차된 차 사이로 좁아진 단지의 길
낮은 아파트 사이 도로의 양옆이 주차 차량으로 채워져 있다. 발코니의 빨래와 겨울 나무가 그 위로 보인다. 집을 중심으로 만든 단지 안에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같은 길을 걷고 주차하고 생활하는 공간이 더욱 촘촘하게 겹쳐진다.
스크린도어가 없던 승강장
초록색 띠를 두른 전동차 옆으로 배낭과 외투 차림의 승객들이 서 있다. 천장의 철골과 노란 ‘나가는 곳’ 표지가 길게 이어지고, 승강장 끝은 밝은 바깥으로 열린다. 선로와 사람이 유리벽 없이 마주하던 지상역의 공간감이 남아 있다.
성내역 창가의 빨간 옷 두 벌
창으로 들어온 햇빛 아래 빨간 옷을 입은 어른과 아이가 서 있다. 벤치에 앉거나 기둥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짙은 그림자 속에 있다. 작은 역명판과 벽돌 벽, 창밖의 아파트가 함께 담겨 출퇴근 시설 안에도 서로 다른 기다림이 있음을 보여준다.
아파트, 도로, 둔치가 나란히
길게 늘어선 장미아파트 옆으로 자동차 도로와 초록빛 제방, 강변 운동장이 평행하게 이어진다. 물가로 내려가기까지 여러 높이와 경계를 지나야 하는 구조가 보인다. 한강 가까이 산다는 것은 강을 바라보는 일과, 강까지 가는 길을 찾는 일이 함께 있는 생활이었다.
토성 위의 길과 유리 빌딩
낮은 밧줄 울타리가 초록 둔덕의 곡선을 따라가고, 산책로 너머에는 높은 업무용 건물이 솟아 있다. 백제의 몽촌토성은 현대 도시의 바깥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에 남았다. 완만한 흙의 높이와 반듯한 빌딩의 높이가 같은 시야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보여준다.
백제 고분 옆을 지나는 오늘의 길
기와지붕과 돌담 앞에 붉은 꽃이 피고, 그 옆으로 승용차가 지나간다. 두 사람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평범한 동네의 이동을 이어간다. 석촌동 고분 주변에서는 오래된 유적과 자동차 도로, 걷는 사람이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웃이다.
넓은 흙마당을 가로지르는 아이들
노란 상의와 멜빵바지, 작은 모자를 쓴 아이들이 넓은 흙바닥을 걷는다. 머리 위에는 새들이 흩어져 날고, 멀리 나무 그늘에 다른 방문객들이 보인다. 유적을 둘러싼 열린 공간은 설명판을 읽는 장소이면서, 아이들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네의 마당이기도 하다.
경기장을 바라보며 물 위로
몇 사람이 보드에 엎드리거나 몸을 낮춘 채 물 위에 떠 있고, 한쪽에는 분홍색 돛이 서 있다. 건너편 잠실종합운동장은 물가의 배경이 된다. 관중석에서 운동을 보던 풍경과 달리, 여기서는 시민이 직접 강을 사용하는 수상 여가가 펼쳐진다.
자동차 길 아래의 자전거 길
밝은 운동복과 헬멧 차림의 자전거 이용자들이 붉은 길을 따라 다가온다. 바로 위에서는 굵은 교각이 고가도로를 떠받치고, 길 양쪽에는 풀이 무성하다. 같은 강변을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와 몸으로 이동하는 자전거가 서로 다른 높이에서 나란히 흐른다.
2004–2009
집은 다시 짓고, 계절은 돌아오고
아파트가 사라진 땅 옆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고, 공원을 걷고, 아이의 사진을 찍습니다. 크게 변하는 도시와 반복되는 일상이 함께 잠실의 기억이 됩니다.
눈이 덮인 공원의 세 벤치
나뭇가지와 잔디가 하얗게 덮이고, 세 벤치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 사람은 붉은 외투를 입고 걷고, 다른 사람은 벤치 끝에 앉아 있다. 대규모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가장 조용한 계절에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작은 자리들로 나뉜다.
불빛으로 드러나는 교차로의 크기
위에서 내려다본 교차로에 여러 줄의 차량과 긴 빛의 궤적이 겹친다. 모퉁이의 나무 장식과 상업시설도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난다. 낮에는 차선으로 읽히던 길이 밤에는 움직임의 흔적으로 보인다. 잠실의 큰 상업 중심지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규모가 드러난다.
가을 축제를 알리는 커다란 자전거
꽃밭 위에 흰색 자전거 모양 장식이 크게 놓이고, 그 위의 간판은 가을 축제를 알린다. 뒤편으로 노랗게 물든 가로수가 이어진다. 익숙한 공원 입구도 계절에 맞춘 장식과 행사를 통해 새롭게 방문할 이유를 만든다. 동네의 반복되는 시간이 축제의 달력이 된다.
집이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땅
한강 옆 넓은 부지가 흙빛으로 비어 있고, 공사 구역을 가르는 도로가 선명하다. 주공아파트가 있던 자리와 주변의 남은 주거지가 뚜렷이 갈린다. 잠실1·2단지 재건축 현장의 이 빈 화면은, 오래된 동네가 새 아파트 단지로 바뀌는 사이의 짧은 시간을 기록한다.
아파트 대로를 건너는 여름 사람들
흰 횡단보도 위를 반바지와 가벼운 상의 차림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건넌다. 한 사람은 양산을 들고, 뒤편의 자동차는 신호를 기다린다. 길 양옆으로 반복되는 아파트 벽 사이에서 사람의 걸음이 도로의 크기를 가늠하게 한다. 넓은 차도도 잠깐은 동네의 보행로가 된다.
물가에서 눈높이를 낮추는 순간
검은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어른이 몸을 낮추어 아이를 바라본다. 둘 사이 돌 위에는 먹을거리와 음료가 놓여 있고, 뒤로는 다리와 물이 이어진다. 거대한 한강 시설 앞에서도 사진의 중심은 가까운 두 사람의 몸짓이다. 강변 나들이의 기억은 이런 작은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한 끼를 고르는 신천의 골목
아구찜과 닭한마리, PC방 간판 아래로 사람들이 걸어온다. 승합차와 배달 차량이 가게 앞에 서 있고, 길은 사람과 차가 함께 쓴다. 신천 먹자골목은 식사와 만남, 오락이 가까운 거리에 모인 곳이었다. 길을 걷는 일 자체가 오늘 무엇을 할지 고르는 과정이 된다.
횟집 간판 아래의 파란 화물차
오징어와 도다리, 우럭 등 메뉴가 커다란 간판을 채우고, 가게 앞에는 수조와 냉장 설비가 놓여 있다. 파란 소형 화물차가 화면 아래를 가로지른다. 손님에게 보이는 음식 이름 뒤에는 물건을 나르고 보관하는 일이 있다. 먹자골목의 활기는 이런 작은 유통과 노동 위에 놓여 있다.
유리창 속 음식과 맞은편 거리
진열장 안에 접시별 음식 모형이 줄지어 놓이고, 유리에는 맞은편 간판과 자동차가 비친다. 글로 된 메뉴를 읽기 전에 음식의 모양과 양을 눈으로 고를 수 있게 한 장치다. 가게 안의 식사와 바깥 골목의 풍경이 한 장의 유리 위에 겹쳐진다.
광장은 자전거가 지나가는 곳
어른이 모는 자전거 뒤에 아이가 타고, 곁에서는 작은 자전거가 같은 방향으로 간다. 뒤편에는 여러 색과 무늬의 곰 조형물이 줄지어 있다. 올림픽공원의 넓은 광장은 전시장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달리고 자전거를 배우는 생활 공간이기도 하다.
곰 조형물 옆에서 남기는 한 장
한 아이가 커다란 곰 조형물 옆에 서고, 모자를 쓴 어른이 카메라를 들어 그쪽을 향한다. 조형물마다 다른 그림과 색이 나란히 이어진다. 공공장소의 전시는 작품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옆에 서서 찍은 개인 사진 속으로 들어가 나들이의 기록이 된다.
다리 위 자동차, 다리 아래 작은 배
석촌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자동차가 지나고, 아래에서는 지붕 있는 작은 배가 물길을 따라간다. 붉고 노란 잎이 양쪽 물가를 감싼다. 통과하는 길과 천천히 즐기는 길이 같은 장면 안에 겹친다. 도심 한가운데의 호수가 서로 다른 속도를 담는다.
노란 잎이 보도가 된 날
은행나무 잎이 머리 위와 발밑을 노랗게 채운다. 점퍼와 긴소매 차림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걷고, 일부는 길 한쪽에 잠시 멈춰 있다. 지하철역 주변의 익숙한 보도가 계절의 구경거리가 된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함께 걸을 이유를 주는 동네의 가을이다.
운동복 두 벌이 지나가는 붉은 길
파란색과 빨간색 운동복을 입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다. 나무가 양쪽으로 줄지어 선 길에는 낙엽이 두껍게 내려앉아 있다. 화려한 놀이시설이나 큰 행사가 없어도 공원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장소가 된다. 반복되는 산책이 동네를 오래 기억하게 한다.
달리기 전에 한꺼번에 올라간 손
민소매 운동복과 번호표, 모자와 선글라스 차림의 참가자들이 길을 가득 메웠다. 많은 손이 동시에 올라가 카메라 쪽을 향한다. 도시의 큰 도로가 잠시 시민들의 출발선이 되는 순간이다. 기록을 겨루는 운동과 함께 모이는 축제의 성격이 마라톤 안에서 겹친다.
다리를 건너다 잠시 머무는 밤
둥근 유리창의 전망 공간에 불이 켜지고, 나무 바닥의 보행로가 난간을 따라 이어진다. 옆 차도에는 자동차 불빛이 긴 선으로 흐른다. 잠실대교는 이동하는 시설에 머무는 자리를 더했다. 강을 건너는 일과 강을 바라보는 일이 한 길 위에서 만난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새로운 잠실
뚝섬 쪽 강변의 넓은 포장면과 어린 나무 너머로 한강이 펼쳐진다. 건너편에는 잠실종합운동장과 높아진 아파트들이 긴 수평선을 이룬다. 이 사진의 잠실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동네다. 물가의 공원과 주거지의 높이가 함께 달라진 2009년의 풍경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